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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돈을 넣어두고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금리 생활자들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일이다. 문제는 쉽사리 금리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 상황을 보더라도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이라크 문제와 북핵 문제, 신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반 걱정반의 목소리 등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따라서 싫든 좋든 하루빨리 제로금리에 자신의 재테크 체질을 맞춰야 한다. 제로금리 시대의 개막은 금융기관과 개인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생존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제로금리로 나타난 새로운 재테크 트렌드를 점검하고 내 재산을 지키는 법에 대해 알아 본다.
| 저축에서 투자로
사실 그 동안 저축과 투자의 구분은 모호했다. 은행 예금에 가입하는 사람도, 주식을 사는 사람도 모두 ‘투자’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이젠 개인투자자들도 저축과 투자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저축은 ‘1＋1＝2’다. 투자는 1＋1이 2가 될 수도 있고 3이 될 수 있다. 반대로 -1이 될 수도 있다. 초과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금융상품 선택의 몫이 과거에는 은행에 있었지만 이젠 가입자들에게 있습니다. 선택의 폭은 넓어진 반면 책임감도 늘어난 것이죠”라고 말한다. 은행권의 투자신탁(펀드)상품의 판매 추이를 보면 이런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은행의 투신상품 판매 규모는 약 20조원 규모(지난해 말 기준)로 전년 말에 비해 31.9％(약4조6천7백억원)나 늘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계속될 전망이다.
| 퓨전형 금융상품이 뜬다
과거 금융상품은 선택요령이 간단했다. 금리를 비교한 후 1％라도 금리를 더 주는 곳에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제로금리 시대가 되면서 이런 관행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초과 수익이 기대되는 퓨전형 금융상품이 잇달아 등장하고 여기에 돈이 몰리고 있다.
은행 예금에 돈을 넣어두면 기껏 받을 수 있는 이자는 4％대 안팎이다. 이 금리에 만족할 사람은 없다. “금리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하는 고객은 없는 상황입니다. 중요한 건 기대수익이죠. 단, 원금을 지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이상화 동원증권 마제스티클럽 지점장)
원금보장형 상품 중 간판은 은행권에서 판매하는 주가지수연동예금이다. 이 상품은 원금을 보장하면서 증시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상품으로 2월 중순까지 보름 동안 무려 1조5천억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이에 뒤질세라 증권·투신업계도 원금보장형 퓨전형 상품을 출시했다.
장외파생상품 거래 인가를 받은 삼성증권·LG투자증권·대우증권 등 6개 증권사는 원금 보장과 확정수익이 가능한 지수연동채권(ELN)을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은행권의 지수연동정기예금과 거의 비슷한 구조다. 채권에서 발생할 이자를 감안, 이자분만큼 사전에 할인해 만기시점에 원금을 확보하고 나머지 돈으로 주가지수선물 등에 투자한다.
퓨전형 상품들이 인기를 모으자 각 금융권들은 상품개발 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투신권은 이미 지난해부터 상품개발 담당자의 몸값이 치솟기 시작했고 은행들도 상품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일례로 신한은행의 경우 은행장 직속의 상품 개발실을 설치했다. 과거에 신탁상품은 신탁부에서, 외환상품은 외환관련 부서에서 만들었지만 이젠 통합해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 금리외적인 서비스 강화
은행들은 요즘 돈이 들어와도 걱정이다. 돈 장사를 하는 금융기관이 돈을 갖다 맡기는데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돈이 들어와도 굴릴 곳이 없어서 난리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금리가 낮으면 예대마진으로 돈을 버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은행들은 최근 펀드 판매를 통한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예대마진은 은행이 리스크를 감수하지만 펀드 판매는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임병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들이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해 비이자수익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리 경쟁이 의미가 없어지자 은행들은 금리 외적인 부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단, 이런 서비스는 모든 고객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대개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소유한 프라이빗뱅킹 고객들에게만 한정된다.
부동산 종합관리, 변호사와 세무사 상담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프라이빗뱅킹 서비스의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소액 고객들은 이런 서비스의 사각지대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수익성이 낮은 고객이기 때문이다. 소액 투자자들은 이제 알아서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 해외투자 관심 고조
지독한 저금리로 거액 자산가들 중 일부는 해외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민간 사람들 조차도 금리를 두고 너무 심한 수준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민 선호 지역 중 하나인 뉴질랜드는 금리가 5.5∼5.8％, 오스트레일리아도 5％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리스크도 없습니다. 비슷한 금리라면 굳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이유가 없는 거죠.”(임동하 하나은행 골드클럽 부장)
달러로 예금하는 외화예금과 미국 국채 매입도 늘고 있다. 한상언 신한은행 팀장은 “아직 환율이 낮은 수준이고 나라가 뒤숭숭하니까 달러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언론 보도처럼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해외투자에 적극적인 곳은 개인이 아닌 금융기관들. 금융기관의 해외투자는 2002년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3％나 증가했다.
| 탈출구 없는 금리생활자들
50대 초반에 퇴직한 A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명예 퇴직금으로 1억원을 받았지만 돈 굴릴 곳이 없어 막막하다. 그래도 빚이 없어 사정은 나은 편이다. 주위 동료인 C씨는 빚 잔치를 하고 나니 손에 남은 돈이 고작 3천만원에 불과했다.
이자를 받는 안전한 투자처에 투자하자니 비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IMF 환란 이전만 해도 2억원이 있으면 월 2백만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5억원이 있어야 그 정도 이자 수입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임대상가에 투자하기도 만만찮다. 부동산 경기가 한풀 겪였고 상가는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5년 전 2백만원은 현재 3백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임동하 하나은행 부장은 “사실 금리생활자들은 대안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빈익빈 부익부 상황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시한다.
원금을 다치지 않고 그나마 가능한 투자처는 은행권의 후순위채나 일부 증권사가 판매하는 특판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들 상품은 언제라도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판매 시점을 기다려야 한다.
임부장은 “최근 들어 6％대에 판매되는 후순위채를 언제 살 수 있느냐는 문의를 부쩍 많이 받고 있습니다. 판매가 되더라도 금세 마감이 되기 때문에 사전에 예약을 해 놓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 부자들은 부동산 처분 중
거액 자산가들은 부동산 처분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규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억제책과 너무 오른 부동산 가격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거액 자산가들이 찾는 물건은 서울 강남 등 요지에 위치한 5층 이하의 상가건물이다.
다른 부동산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시각이다. 거액 자산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노무현 신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투자하는 것을 꺼림직 해 하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돼 활황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